*아카아무 전력 60분. 키워드 ‘커피와 설탕’
*상윤준영
*슈레이
산미가 강한 커피는 질색이다. 좋아하는 것은 핸드 드립이나 더치, 사이폰으로 내린 것도 나쁘지 않다. 에스프레소를 가장 좋아하지만 콘파냐도 가끔은 괜찮지. 아이리쉬 커피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휘핑크림을 잔뜩 얹은 카라멜마끼아또를 쳐먹는 남자가 하나. 강준영은 체면상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싶은 것을 참고 한마디 해 주었다.
“입맛 떨어지게 그런 걸 잘도 먹는군요. 그러니 섭식이 나쁜 겁니다, 이상윤.”
“내 섭식은 나쁘지 않네만.”
“아까 라자냐 남겼잖아.”
남긴 게 아니라 준영이 워낙 잘 먹기에 양보한 것이었다. 상윤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랬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형, 왜 여기 있어요?”
“오늘 20시에 입국한다고 메시지 보냈는데. 못 봤나?”
“그게 오늘이었어요?”
준영이 부스스 일어나서 침대 옆 스탠드를 켰다. 평소 같았으면 벌떡 일어나 맞이해 주었을 그가, 겨우 더듬더듬 손을 뻗어 작은 불빛을 비추는 모습이 퍽 피곤해 보였다. 눈도 채 뜨지 못하고 따가운지 계속 비벼대는 것이 가여울 정도였다. 어깨에 맨 짐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리고 다가가 손을 붙잡았다. 그러지 말아, 눈가에 입맞춰주고 몇시에 잤느냐 물으니 준영은 사흘만에 겨우 두 시간 잠든 것이었다. 비행기에서나마 잘 자고, 시차 적응이 덜 된 아카이가 더 활기 넘쳤다.
“좀 더 자.”
“싫어... .”
상윤이 아는 강준영은 ‘잘자요. 내일봐요.’ 인사하고 키스를 해주는 다정한 연인이었을지언정 어리광을 부리는 애인은 아니었다. 그의 어깨가 화가 난 사람처럼 들썩 거리고, 숨도 거칠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상윤은 얼른 모자와 재킷도 벗고 준영의 옆에 누웠다. 겨울 바람의 텁텁한 냄새가 남아있는 품으로 준영이 파고들었다. 허리를 감아 바짝 끌어안고 등을 얼러주자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돌아갔다. 잘 마른 볏짚색이지만 무척이나 부드러운 머리칼도 쓰다듬어 주고, 희미한 스탠드 빛을 끄려 손을 뻗었다. 얼러주던 손길이 없어져서 인지 준영이 또 뭐라 잠꼬대를 했다.
“억울해. 내가... 내가 형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 근데 오늘인지도 몰랐다니... 억울해.”
“뭐가 그렇게 억울해, 준영아. 나흘이나 있을 거니까 일단 자.”
“나흘 밖에지!”
준영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침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상윤은 어안이 벙벙해 준영을 안고 있던 자세 그대로 몇 초 굳어 있다 곧 따라 나갔다. 준영이 식탁 다리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자고 있었다. 들어 옮기려고 하자 팔을 마구 휘저으며 저항했다. 귀찮다기 보다 웃음이 났다. 5년이 넘게 알고 지냈는데, 연인의 새로운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준영아 여기서 자면 어떻게 해.”
“커피, 마실 거야.”
그래도 직업상 인기척에 예민한 준영이 금방 일어나 커피를 타겠다며 찬장을 뒤졌다. 수면 부족과 업무 과다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해서 헛손질만 연발해댔다. 얼른 커피를 타 주고 재울 요량으로 상윤이 종이 필터와 원두가루를 꺼냈다. 준영을 잘 달래 의자에 앉혀 놓으니 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물을 끓이고 드립용 주전자에 옮겨 담아 적당한 온도로 식혔다. 준영이 하던 것처럼 천천히 원을 그리며 드립퍼에 물을 부었다.
“우유 넣어줘요. 각설탕도 세 개.”
“의외인 걸. 설탕 안 넣어 마시잖아.”
“소리를 들으니까 맛이 없겠어. 너무 천천히 내렸잖아요. 설탕이라도 넣어 먹어야지.”
“...자네 잠 다 깼나?”
말하고 맞은편의 그를 보면,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잠에 취했어도 경찰청 경비기획과 강준영은 귀신 같은 남자였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김이 나는 커피에 천천히 섞었다. 좋아하는 그의 피부색과 비슷해졌을 때, 스푼을 놓고 각설탕 세 개를 퐁당퐁당 빠뜨려 주었다. 젓지 않고, 가라앉은 설탕이 서서히 섞이는 맛을 즐기는, 강준영은 그런 취향이었으니까.
상윤이 타준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던 준영이 또 한 번 억울함을 성토했다. 뭐가 그렇게 억울해서. 일이 많은 것도, 자주 만날 수 없는 것도 늘 있는 일이었다. 떨어져 있는 공백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서로 바빴으니, 오히려 불행 중 다행이라 여기던 둘이었다.
“내가, 얼마나 형이랑 하고 싶었는데. 그랬는데! 너무 피곤해서 안 서잖아!”
강준영이 다 마신 머그잔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굵은 눈물이 그가 자랑하는 대리석 식탁위로 떨어졌다. 상윤은 손을 뻗어서 그 눈물을 손바닥에 받아내었다.
“그게 억울했어? 세상에 준영아... .”
사람이 이렇게 사랑스러웠던 적이 있을까? 상윤이 일어나서 준영의 의자를 밖으로 돌리곤, 그의 발치에 앉았다.
“Don't worry. No problem. It doesn't matter, baby."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방법은 하나만이 아니다. 마음만 통한다면, 그런 것은 전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 연인이 5살 연하임을 실감하면서 상윤은 그의 무릎에 머리를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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