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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삐요 요구르트'◇'





그 거리에는 독특한 풍경이 있다. 몇 주만에 만들어진 풍경이라 명물이라기에는 어색했으나 무척 신기하기는 했다. 즐비한 고층 오피스 사이에서 노란 머리통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 앞에 정장을 갖춰 입은 회사원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5200원입니다. 오늘도 힘내세요!”

시원한 웃음에 8월의 더위도 꺾이는 듯 했다. 짙은 피부에 밝은 머리색을 한 청년이 요구르트를 건넸다. 계산이 빠르고 정리도 솜씨가 있어서, 줄은 금방금방 줄었다.

챙이 달린 노란 모자를 벗어 팔뚝으로 땀을 걷는 모양이 마치 광고의 한 장면이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묻는 호감 섞인 질문에 ‘몇 살로 보이세요?’ 어물쩍 넘기는 처세도 있었다. 9시가 다 되어갈 때쯤엔 ‘대리님, 출근 카드 먼저 찍고 오세요. 챙겨둘게요.’ 하는 센스도 있어 몇 주만에 오피스 거리의 아이돌이 되었다. 

경쟁 업체의 판매 사원들은 상대가 되지 않아 거점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삐요 요구르트 본사에서 자리를 박으려고 보낸 베테랑 영업사원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뜬소문의 주인공은 호감 가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동식 냉장고에서 차가운 음료를 꺼내주었다.

“선생님 이거 하나 드세요.”

“항상 고마워서 원. 이거 얼마요, 기준 씨?”

“맨날 이 앞에서 폐 끼치는 걸요.”

손사래를 치는 청년에게 경비원이 잘 먹겠다 인사를 했다. 생수병 하나를 꺼낸 그도 단숨에 비워냈다. 

“허 차장님 연차이신가 봐요? 어제부터 안 보이시네요. 예약하신 거 있는데 미뤄드려야 할까봐요.”

“사람들 얼굴을 다 외워요? 전설의 영업사원이라는 게 사실인가 봐. 보자, 다음 주까지 해외 출장이네. 그렇게 해 줘요.”


챙 아래로 날카로워진 청년의 눈을 눈치채지 못하고 경비원이 농을 했다. 기준은 밝게 웃으면서 그런 말이 도냐고 웃고 말았다. 




***




“좋은 아침입니다!”

출근길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쾌청한 목소리였다. 매일 아침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얼굴은 잘 생기기까지 해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는 지폐사이로 수줍게 끼워둔 명함을 못 본척 재빠르게 힙 색에 갈무리했다. 웃으며 잔돈을 건네는 얼굴은 언제나처럼 평온해서 명함의 주인은 나중에 연락 달라는 말 한 마디도 덧붙이지 못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경비직원은 어지간히 익숙한가 보다, 혀를 찼다. 아쉬워보이는 낯에 부드럽게 아침 인사를 챙기며 속으로 위로했다. 그 팀 대리님도 명함 줬는데 아무 일 없는 것 같으니 대수롭게 생각 마요, 젊은이. 옆 팀에 새로 온 사람도 주데.

계산하는 지폐 사이로 쪽지가 끼어 있을 때도 있었다. 괜한 참견하기 싫어 다들 모르는 척 했지만 청년은 정말로 인기가 좋았다. 큰 키에 잘 생긴 얼굴에 사근사근한 성격에 없는 게 이상하긴 했다. 근사하게 처진 눈을 접어가며 인사를 할 때는 이런 훤칠한 자식 가진 부모는 참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이스박스가 실린 작은 리어카 정도였던 요구르트 수레는 고객이 늘면서 점점 커져서 어느새 냉장 기능이 있는 커다란 전동 수레가 되었다. 병아리 그림이 그려진 샛노란 수레가 어색할만도 한데 노란 모자에 유니폼을 입은 청년에겐 그린 듯 어울렸다. 

그가 자리를 떠나는 시각은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중간중간 귀에 건 무선 이어폰으로 대화를 하기도 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그는 웃으며 간단한 대답을 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단순한 판매직원이 아닐 거란 소문은 확신이 되었다. 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 파견 된 본사의 스페셜리스트임이 틀림 없었다. 

안기준은 노트북과 영수증을 늘어놓고 매출을 정리했다. 매일 퇴근 후 하는 일과였다. 일별, 주별, 달별로 정리해 레포트도 만들었다. 매출은 계속 상승세였다. 오전에는 출근 고객을 상대하고, 오후에 단체 배달도 하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영업소보다 기준에게 연락해 직원들 간식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꽤 생겼다.

주로 아침 일찍 일하고 낮에는 자유시간이 생기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면 포아로 그만 둬도 될 지도. 필요한 영수증을 장부에 꼼꼼하게 붙이면서 기준이 셈했다. 

원래 잠은 적게 자는 편이었다. 카페에 출근하기 전까지 운동이나 하려고 스웨트를 벗고 검은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인적 드문 하천을 달리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적었다. 볕은 뜨거웠지만 물길을 따라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을 간질였다. 땀 흘리고 나서 하는 샤워는 피로감을 말끔히 씻어내 주었다. 

점심은 구은 가지를 곁들인 마파두부 덮밥이었다. 기름을 넉넉하게 둘러서 튀기듯이 바삭하고 노릇하게 구운 가지가 매콤한 두반장 소스와 어우러지는 맛이 일품이었다. 양껏 입안에 넣어 우물거렸다. 

4시 시프트에 맞게 청소를 하고 카운터에 서니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소년의 얼굴은 나이에 맞지 않게 조금 우울하고 곤란해보였다. 웃음이 나올 뻔 했다. 기운 빠진 아이 앞에 주문도 하지 않은 아이스 커피를 밀어주자 단숨에 들이켰다.

“와-! 오늘 정말 덥네요! 그렇죠, 기준이 형?”

어디로 보나 8살 아이의 말투였다. 방실방실 웃는 얼굴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어머니를 닮아서일까. 모르는 척 마주 웃어주었다. 더워 보인다며 보타이를 벗는 게 어떨까 코난, 걱정스럽게 덧붙였다. 싫어요. 대답한 소년은 애교스럽게 양손으로 턱을 기대던 걸 집어치우고 컵에 꽂아준 분홍색 빨대를 질겅질겅 깨물었다. 

손님은 소년뿐이었다.

“기준이 형 요즘 출근 안 해요?”

“지금 출근해 있잖니?”

“아, 좀….”

소년이 가자미처럼 옆눈을 떴다. 맥이 빠진 목소리였다. 

“아는 사람이 회사 건물들 앞에서 기준이 형을 봤대요.”

“여전히 다른 사람 일에 관심이 많구나, 코난.”

커피 대신 얼음물과 작은 쿠키 몇 개를 앞에 놓아주었다. 코난이 모르는 척 작은 아이마냥 칭얼거렸다. 회사 앞에서 봤다면 보통은 출근을 하느냐 물어야 할 텐데, 소년은 출근 안 하느냐 물었다. 뻔한 떠보기에 기준은 아무 것도 대답해주지 말까 하다가, 사이에 끼어버린 그가 불쌍해 딱 한마디만 해 주었다.

“그 아는 사람한테 전해 줄래? 내 나라에서 나가 달라고.”

턱을 괴고 허리를 숙여서 눈을 맞췄다. 평소보다 화려한 웃음이었다. 포와로에서 보다는 밤에 몇 번 봤던 그 웃음. 소년이 먹던 쿠키를 툭 떨구곤 얼렐레 시간이 다 됐네, 박사님이랑 약속이 있어요,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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