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키워드: 사랑의 기술
*아카아무 전력 120분
아카이 슈이치가 일본에 집을 샀다. 보고받은 후루야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길고 긴 공조 수사와 방대한 서류처리가 제법 결을 갖춰, FBI는 일본을 떠날 준비중이었다.
비밀리에 또 일본에서 잠입 수사라도 하려는 걸까. 그런 기미가 있었다면 놓쳤을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카이가 얽혀 있으므로 확신할 수 없었다. 아카이 슈이치가 어떤 인간인지, 그의 사고를 예측 할 수 있을 정도로 분석했다고 생각했는데 근래 그는 정말 지독하게 의미불명이었다.
"뭡니까. 우물쭈물하지 말고 그냥 말 하세요."
"그래도 되나?"
"그렇게 뱅뱅 맴도는 것보단 나을 거 같습니다."
"오늘 근사하군. 아니, 자네는 항상 아름답지만 오늘은 특별히 그래."
말하는 어투가 몹시 문어적이라, 그래 이 사람 외국에만 오래 살았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꽤나 낯간지러운 말을 들었는데, 셰익스피어를 읽듯 현실감 없었다. 그가 천천히 뻗는 손을 피하지 못한 것도 분명 그 탓이었다. 머리카락 말단을 손가락 끝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경찰청 간부가 대거 참여하는 전체회의-라는 이름의 공개처형 인사평가-가 있었으므로 힘을 줘 입은 날이었다.
이런 식으로. 후루야 주위를 맴돌면서 호의를 표현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 와 있어서, 부러 맴돈다는 것을 깨닫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매일 쉬는 시간 마주치기엔 그도 무척 바쁜 사람이었다.
오늘은 슈퍼에서 장을 보는데 어느새 시야에 서 있었다. 오랜만에 정시퇴근을 한 참이었다. 피로한 몸과 살을 에는 추위에 따끈한 국물이 당겼다. 오뎅탕이나 국밥도 좋지만 이런 날엔 전국 공통 메뉴가 있다. 모름지기 음식은 맛있는 때에 맛있게 먹어줘야하는 법이었다.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표고가 딱 한 봉지 남아 있었다. 미나리를 바구니에 담은 즉시 발을 재게 놀렸지만 시선 끄트머리에 있던 아카이가 좀 더 빨랐다. 아, 안타까움이 입 밖으로 새어나갔다. 표고 버섯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좋을 재료였다. 갓이 멋지게 핀 특품 표고였다. 쑥갓, 미나리, 소고기, 양파, 무, 배추 전부 바구니에 담았지만 역시 표고가 없으면 안됐다.
양손가득한 양으로 포장된 표고꾸러미와 후루야를 번갈아 본 아카이가 씨익 근사하게 웃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몸을 돌려 근처 해산물 코너를 기웃거렸다. 못 본거야. 난 아카이 슈이치 따위 보지 못했어. 그 아카이 슈이치의 팔뚝 만큼이나 두꺼운 갈치가 토막 나 깨끗하게 포장돼 있었다. 기분을 바꿔서 조림을 해도 좋았다. 배추와 미나리는 국에 넣으면 만사 해결이었다. 그래, 추울 때는 조림도 괜찮지. 마음 속 작은 후루야 레이가 실망스런 표정을 했지만 머리를 작게 털어내 쫓았다.
톡톡. 갈치의 은빛 비늘을 살피는 사이로 작고 귀여운 소리가 울렸다. 쥐도새도 모르게 옆으로 온 -후루야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FBI의 기술을 동원해서- 아카이가 차마 그의 몸에 손대지 못하고 그가 든 플라스틱 장바구니의 손잡이를 조심스레 건드리는 소리였다. 의아하게 보자, 아카이가 떨떠름한 얼굴로 표고버섯을 후루야의 장바구니에 넣었다.
"아, 잠깐... . 왜?"
그럴 필요 없다는 의미였지만 아카이가 짧게 손을 한 번 휘저었다.
"나는 필요 없으니 자네가 가져가."
"괜찮습니다. 당신이 먼저 골랐잖습니까."
"나는... 정말 필요가 없어."
아카이가 그답지 않게 말을 뭉뚱그렸다. 필요 없다면 뭐하러 집어들었지? 충동적이었나? 후루야가 선뜻 받아들지 않자 아카이가 머뭇머뭇 이유를 덧붙였다. 재료들을 보아하니 오늘 메뉴는 전골인데, 자네가 필요할 테니 내가 남은 걸 가져가면 나누자던가, 말을 붙여줄 거 같아서.
세상에. 마음 속 작은 후루야 레이가 호들갑을 떨어댔다. 떨떠름해 보이던 얼굴은, 이제 강아지처럼 시무룩해 보였다. 이제 와서 나눌까요, 묻기에도 겸연쩍어 후루야는 잠시 아카이의 장바구니를 들여다 봤다. 생필품 몇가지가 들어 있을 뿐 식재료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신은, 오늘 저녁으로 뭐 먹을 건가요?"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아카이가 천천히, 아무렇게나 말한다고 여겨지지 않도록 적당히 집에 있는 걸로, 대답했다. 후루야는 그의 눈 높이로 장바구니를 들어올렸다.
"그럼 같이 먹겠습니까? 보시다시피 혼자 다 먹기엔 너무 많거든요. 그쪽 집에 가도 된다면 말이지만."
현재 아카이가 사는 맨션은 공안에서 수배했다. 후루야는 정확한 집주소까지 훤히 알고 있었다. 슈퍼에서 꽤나 가까웠다. 부하에게 대충 예산 내에서 생필품도 채워놓으라고 했으니 냄비정도는 있을 것이었다.
언제 또 정시 퇴근 할 지 알수 없는데 신선식품이 너무 많아서 아깝다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대면서, 후루야는 제법 긴장하고 있었다. 집에 들일 정도의 호감은 아닐지도 몰라. 아카이의 크게 뜨인 눈이 천천히 접혔다. 녹색 눈동자에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드리우는 광경을 보다, 장바구니를 그에게 빼앗겼다.
"내가 들지."
"그래요."
후루야가 카드를 흔들었다. 남의 집에 가는 데 선물을 준비 못했으니 계산이라도 해야했다.
***
걱정과 달리 그의 집에는 커다란 양수냄비가 있었다. 식탁겸 조리대에 핫플레이트도 있어서 맞은편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한가한 대학원생 놀이를 하더니 기본적인 손질도 할 줄 알았다. 후루야는 폰즈소스를 만들고 육수간만 봐주었다. 아카이가 핫플레이트 옆에서 야채를 써는 동안, 그는 개수대와 가스레인지 사이에서 생선을 손질했다. 무를 깐 냄비 속에 차곡차곡 갈치를 쌓아 넣고 뭉근하게 불을 올려두고 앞치마를 벗었다.
전골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지만 아직 재료가 다 익지 않았다. 식탁이 적막했다. 아카이는 후루야가 지루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았는데 그는 젓가락을 꼭 쥐고 냄비를 전투적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집중력이 대단했다.
"좋아! 이제 먹읍시다. 배추 먼저 먹고, 오뎅, 그 다음에 고기를 드세요."
"그러지."
"당신은 국수파입니까 죽파입니까?"
"아무거나 좋아."
"그럼 둘 다 먹읍시다."
"그래."
6피트가 넘는 둘답게 커다란 냄비가 빠르게 줄었다. 후루야는 사온 키시면을 탁탁 쳐 정리하면서 콧노래를 흘렸다. 아카이는 뜨거운 유부 주머니를 앞접시에 덜긴 했는데, 어쩔 줄 모르는 중이었다. 후루야가 아카이의 손에서 젓가락을 빼앗아 유부피를 살짝 찢었다. 주머니속에 가득 차있던 국물이 굼실굼실 흘러 나왔다. 도로 쥐어주고 냄비에 키시면을 멋지게 둘러넣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왼쪽 흉부에 심한 충격을 받은 아카이가 정신을 차리고 가해자를 봤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핫플레이트에 가 있었다.
"후루야군. 결혼해줘."
"네에."
"반지는 내가 준비하지."
"...네?"
원고의 질의에 의문점을 발견한 후루야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서 아카이를 직시했다. 올리브색 눈동자가 전골 냄비마냥 부글거렸다.
"뭐라고 하는 거야."
"나는 적극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그런 종류의 호감인 줄 몰랐죠. 아니, 그보다 다짜고짜... . 그 전에 사귀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의 말투가 당황으로 물렁해진 걸 아카이는 놓치지 않았다. 지금은 물러날 때가 아니라 돌파할 때였다.
"그럼 나와 사귀어 줘."
"싫어요."
"레이... ."
그 거부가 어딘지 연약하게 흘러나와서 아카이는 희망을 얻었다. 그렇다. 아무 생각 없는 상대의 집에 밥을 먹으러 올 성격이 아니었다. 적어도 친구 정도의 호감은 그도 아카이에게 느끼고 있었다.
"내가 노력할 테니까."
"여기서 얼마나 더?"
"그럼 사귀어 줘."
"...싫어... ."
그 귀여운 우물거림에 아카이는 참지 못하고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성이 말릴 틈이 없었다. 후루야가 벌떡 일어나 맞은편의 아카이를 밀쳤다. 다행히 그 아래는 러그였고, 밀린 상대는 아카이 슈이치였으므로 생채기 하나 남지 않았다.
"아카이!"
"괜찮아. 이건 내가 잘못한거야. 미안하군."
후루야가 살금살금 넘어진 옆으로 다가왔다. 실패의 씁쓸한 맛을 감추면서 아카이는 괜찮다고 웃어보였다. 후루야가 낙법으로 바닥에 닿은 아카이의 오른팔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안되는데, 진짜 안되는데... 들릴 듯 말듯 작게 속삭이는 말이 따라왔다.
"후루야군. 좋아해."
"잠깐 조용히 해 봐요."
후루야가 한발한발 무릎을 끌어 양팔로 안고 눈을 굴렸다. 아카이 슈이치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카아무 전력 120분
아카이 슈이치가 일본에 집을 샀다. 보고받은 후루야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길고 긴 공조 수사와 방대한 서류처리가 제법 결을 갖춰, FBI는 일본을 떠날 준비중이었다.
비밀리에 또 일본에서 잠입 수사라도 하려는 걸까. 그런 기미가 있었다면 놓쳤을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카이가 얽혀 있으므로 확신할 수 없었다. 아카이 슈이치가 어떤 인간인지, 그의 사고를 예측 할 수 있을 정도로 분석했다고 생각했는데 근래 그는 정말 지독하게 의미불명이었다.
"뭡니까. 우물쭈물하지 말고 그냥 말 하세요."
"그래도 되나?"
"그렇게 뱅뱅 맴도는 것보단 나을 거 같습니다."
"오늘 근사하군. 아니, 자네는 항상 아름답지만 오늘은 특별히 그래."
말하는 어투가 몹시 문어적이라, 그래 이 사람 외국에만 오래 살았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꽤나 낯간지러운 말을 들었는데, 셰익스피어를 읽듯 현실감 없었다. 그가 천천히 뻗는 손을 피하지 못한 것도 분명 그 탓이었다. 머리카락 말단을 손가락 끝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경찰청 간부가 대거 참여하는 전체회의-라는 이름의 공개처형 인사평가-가 있었으므로 힘을 줘 입은 날이었다.
이런 식으로. 후루야 주위를 맴돌면서 호의를 표현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 와 있어서, 부러 맴돈다는 것을 깨닫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매일 쉬는 시간 마주치기엔 그도 무척 바쁜 사람이었다.
오늘은 슈퍼에서 장을 보는데 어느새 시야에 서 있었다. 오랜만에 정시퇴근을 한 참이었다. 피로한 몸과 살을 에는 추위에 따끈한 국물이 당겼다. 오뎅탕이나 국밥도 좋지만 이런 날엔 전국 공통 메뉴가 있다. 모름지기 음식은 맛있는 때에 맛있게 먹어줘야하는 법이었다.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표고가 딱 한 봉지 남아 있었다. 미나리를 바구니에 담은 즉시 발을 재게 놀렸지만 시선 끄트머리에 있던 아카이가 좀 더 빨랐다. 아, 안타까움이 입 밖으로 새어나갔다. 표고 버섯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좋을 재료였다. 갓이 멋지게 핀 특품 표고였다. 쑥갓, 미나리, 소고기, 양파, 무, 배추 전부 바구니에 담았지만 역시 표고가 없으면 안됐다.
양손가득한 양으로 포장된 표고꾸러미와 후루야를 번갈아 본 아카이가 씨익 근사하게 웃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몸을 돌려 근처 해산물 코너를 기웃거렸다. 못 본거야. 난 아카이 슈이치 따위 보지 못했어. 그 아카이 슈이치의 팔뚝 만큼이나 두꺼운 갈치가 토막 나 깨끗하게 포장돼 있었다. 기분을 바꿔서 조림을 해도 좋았다. 배추와 미나리는 국에 넣으면 만사 해결이었다. 그래, 추울 때는 조림도 괜찮지. 마음 속 작은 후루야 레이가 실망스런 표정을 했지만 머리를 작게 털어내 쫓았다.
톡톡. 갈치의 은빛 비늘을 살피는 사이로 작고 귀여운 소리가 울렸다. 쥐도새도 모르게 옆으로 온 -후루야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FBI의 기술을 동원해서- 아카이가 차마 그의 몸에 손대지 못하고 그가 든 플라스틱 장바구니의 손잡이를 조심스레 건드리는 소리였다. 의아하게 보자, 아카이가 떨떠름한 얼굴로 표고버섯을 후루야의 장바구니에 넣었다.
"아, 잠깐... . 왜?"
그럴 필요 없다는 의미였지만 아카이가 짧게 손을 한 번 휘저었다.
"나는 필요 없으니 자네가 가져가."
"괜찮습니다. 당신이 먼저 골랐잖습니까."
"나는... 정말 필요가 없어."
아카이가 그답지 않게 말을 뭉뚱그렸다. 필요 없다면 뭐하러 집어들었지? 충동적이었나? 후루야가 선뜻 받아들지 않자 아카이가 머뭇머뭇 이유를 덧붙였다. 재료들을 보아하니 오늘 메뉴는 전골인데, 자네가 필요할 테니 내가 남은 걸 가져가면 나누자던가, 말을 붙여줄 거 같아서.
세상에. 마음 속 작은 후루야 레이가 호들갑을 떨어댔다. 떨떠름해 보이던 얼굴은, 이제 강아지처럼 시무룩해 보였다. 이제 와서 나눌까요, 묻기에도 겸연쩍어 후루야는 잠시 아카이의 장바구니를 들여다 봤다. 생필품 몇가지가 들어 있을 뿐 식재료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신은, 오늘 저녁으로 뭐 먹을 건가요?"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아카이가 천천히, 아무렇게나 말한다고 여겨지지 않도록 적당히 집에 있는 걸로, 대답했다. 후루야는 그의 눈 높이로 장바구니를 들어올렸다.
"그럼 같이 먹겠습니까? 보시다시피 혼자 다 먹기엔 너무 많거든요. 그쪽 집에 가도 된다면 말이지만."
현재 아카이가 사는 맨션은 공안에서 수배했다. 후루야는 정확한 집주소까지 훤히 알고 있었다. 슈퍼에서 꽤나 가까웠다. 부하에게 대충 예산 내에서 생필품도 채워놓으라고 했으니 냄비정도는 있을 것이었다.
언제 또 정시 퇴근 할 지 알수 없는데 신선식품이 너무 많아서 아깝다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대면서, 후루야는 제법 긴장하고 있었다. 집에 들일 정도의 호감은 아닐지도 몰라. 아카이의 크게 뜨인 눈이 천천히 접혔다. 녹색 눈동자에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드리우는 광경을 보다, 장바구니를 그에게 빼앗겼다.
"내가 들지."
"그래요."
후루야가 카드를 흔들었다. 남의 집에 가는 데 선물을 준비 못했으니 계산이라도 해야했다.
***
걱정과 달리 그의 집에는 커다란 양수냄비가 있었다. 식탁겸 조리대에 핫플레이트도 있어서 맞은편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한가한 대학원생 놀이를 하더니 기본적인 손질도 할 줄 알았다. 후루야는 폰즈소스를 만들고 육수간만 봐주었다. 아카이가 핫플레이트 옆에서 야채를 써는 동안, 그는 개수대와 가스레인지 사이에서 생선을 손질했다. 무를 깐 냄비 속에 차곡차곡 갈치를 쌓아 넣고 뭉근하게 불을 올려두고 앞치마를 벗었다.
전골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지만 아직 재료가 다 익지 않았다. 식탁이 적막했다. 아카이는 후루야가 지루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았는데 그는 젓가락을 꼭 쥐고 냄비를 전투적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집중력이 대단했다.
"좋아! 이제 먹읍시다. 배추 먼저 먹고, 오뎅, 그 다음에 고기를 드세요."
"그러지."
"당신은 국수파입니까 죽파입니까?"
"아무거나 좋아."
"그럼 둘 다 먹읍시다."
"그래."
6피트가 넘는 둘답게 커다란 냄비가 빠르게 줄었다. 후루야는 사온 키시면을 탁탁 쳐 정리하면서 콧노래를 흘렸다. 아카이는 뜨거운 유부 주머니를 앞접시에 덜긴 했는데, 어쩔 줄 모르는 중이었다. 후루야가 아카이의 손에서 젓가락을 빼앗아 유부피를 살짝 찢었다. 주머니속에 가득 차있던 국물이 굼실굼실 흘러 나왔다. 도로 쥐어주고 냄비에 키시면을 멋지게 둘러넣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왼쪽 흉부에 심한 충격을 받은 아카이가 정신을 차리고 가해자를 봤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핫플레이트에 가 있었다.
"후루야군. 결혼해줘."
"네에."
"반지는 내가 준비하지."
"...네?"
원고의 질의에 의문점을 발견한 후루야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서 아카이를 직시했다. 올리브색 눈동자가 전골 냄비마냥 부글거렸다.
"뭐라고 하는 거야."
"나는 적극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그런 종류의 호감인 줄 몰랐죠. 아니, 그보다 다짜고짜... . 그 전에 사귀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의 말투가 당황으로 물렁해진 걸 아카이는 놓치지 않았다. 지금은 물러날 때가 아니라 돌파할 때였다.
"그럼 나와 사귀어 줘."
"싫어요."
"레이... ."
그 거부가 어딘지 연약하게 흘러나와서 아카이는 희망을 얻었다. 그렇다. 아무 생각 없는 상대의 집에 밥을 먹으러 올 성격이 아니었다. 적어도 친구 정도의 호감은 그도 아카이에게 느끼고 있었다.
"내가 노력할 테니까."
"여기서 얼마나 더?"
"그럼 사귀어 줘."
"...싫어... ."
그 귀여운 우물거림에 아카이는 참지 못하고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성이 말릴 틈이 없었다. 후루야가 벌떡 일어나 맞은편의 아카이를 밀쳤다. 다행히 그 아래는 러그였고, 밀린 상대는 아카이 슈이치였으므로 생채기 하나 남지 않았다.
"아카이!"
"괜찮아. 이건 내가 잘못한거야. 미안하군."
후루야가 살금살금 넘어진 옆으로 다가왔다. 실패의 씁쓸한 맛을 감추면서 아카이는 괜찮다고 웃어보였다. 후루야가 낙법으로 바닥에 닿은 아카이의 오른팔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안되는데, 진짜 안되는데... 들릴 듯 말듯 작게 속삭이는 말이 따라왔다.
"후루야군. 좋아해."
"잠깐 조용히 해 봐요."
후루야가 한발한발 무릎을 끌어 양팔로 안고 눈을 굴렸다. 아카이 슈이치는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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