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M

[AKAM]둥글고 매끈한

58_오팔 2018. 6. 13. 22:17
*아카후루
*커리 먹습니다



아, 아카이가 해 준 카레 먹고싶다. 푹푹 찌는 더위에 나흘간 청사에서 통조림 당한 후루야는 생각했다. 큼직한 건더기가 잔뜩 들어가고 부드러운 맛이 나는 아카이의 카레. 포장해 온 도시락이며 야근 후 먹은 라멘, 규동도 맛있었지만 내 집에서 파자마만 입고 훌렁훌렁 먹을 수 있는 그가 해 준 집밥이 먹고 싶었다.

물렁한 당근의 단맛을 떠올리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오늘은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중요한 아카이가 없었다. 본국에서의 긴급 호출로 미국 귀환 중이었다. 스스로 끓여도 맛이야 있지만 지금 먹고 싶은 건 아이들 입맛에 맞게 푹 끓인 그의 카레였다.

거의 마무리된 서류를 뜨뜻미지근하게 들추다 거기 머리를 박았다. 아-! 아카이 슈이치! 어물쩍 시작된 연애에 이렇게 연연하게 될 줄이야. 그는 조용히 다정했고 감정에 솔직해서, 어느새 홀딱 빠져버렸다. 그래. 인정하자. 그 없는 집이 약간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관계는 발전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서 편안하게 잠에 빠져든 모습을 보는 것도, 그를 흔들어 깨우는 것도, 반대로 깨워지는 것도 삶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이전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이 년 전 자신에게 너 아카이랑 반동거해, 하고 말한들 믿을 수 있겠는가. 베르무트냐는 적의에 가득 찬 물음이나 쏟아내겠지. 어리석은 이 년 전의 후루야 레이. 너는 그 사람을... .

수사관님.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미 데스크에 쌓여있던 서류는 전부 수정표기와 도장이 찍혀 분류되어 있었다. 유능한 자신이 싫었다. 솔직히, 아카이가 없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잠만 자던 집인데, 이제는 혼자 들어서는 순간 낯선 얼굴을 하고 냉랭하게 서 있었다.

부하가 이게 마지막입니다, 건네는 서류를 받아들었다. 훌훌 넘겨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도장을 찍었다.

"카자미 오늘 저녁메뉴는?"
"댁에 안 돌아가십니까?"

수척해진 모습도 분위기있는 잘생긴 상사에게 카자미가 의아한듯 되물었다. 아무래도 식사권유, 또는 도시락 주문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로서는 먹고 돌아가는 편이 좋긴 했는데, 아무래도 한숨 자고 싶을 부하를 끌고갈 생각은 없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손을 가볍게 저었다.

"아니, 내가 뭘 먹어야될지 모르겠어서."
"글쎄요... 솔직히 그냥 자고 싶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후루야도 그랬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 카레가  먹고싶었다.

터덜터덜 돌아간 스윗홈에는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 있었다. 위화감은 현관을 열자마자 느꼈다. 불 꺼진 실내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빠짝 긴장한 후루야가 현관에 나와있는 신발 갯수를 눈으로 확인하고 재빨리 달려들었다.

가능한한 벽에 붙어서 발소리를 죽이고 소리의 근원지인 주방으로 진입해 검은 그림자를 덮쳤다.

"아카이! 아카이!"
"안녕. 이런, 열렬한 환영인데."

신발도 벗지 않은채 주방으로 달려온 후루야를 그가 번쩍 안아 한바퀴 돌렸다. 버드키스를 받으면서 멋쩍게 웃는 그의 머리로 컵라며 하나가 툭 떨어져 튕겨나갔다. 매우 미국적인 감탄사와 함께 후루야도 땅에 발을 디뎠다.

"배가 고파서."
"불도 안켜고 찬장부터 뒤졌습니까?"

그럴 정도로 허기가 졌으면서, 나뒹귀는 컵라면은 무시하고 그가 후루야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하지만 후루야는 끓어오르는 열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집에 아카이가 있어! 지금!

"어떻게 벌써 왔어요? 많이 피곤해요?"

열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서 아카이의 날선 얼굴을 가만히 쓸어보았다. 초조해하면 안됐다. 여유로운척,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받아내야했다. 그가 눈을 감고 그 감촉을 음미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무 문제 없어. 비행기에서 실컷 잤어. 빨리 돌아오고 싶어서 끝나자마자 공항에 갔더니 마침 취소표가 나왔더군."

아카이가 끌어안은 몸을 더 바짝 당겼다. 하반신이 틈 없이 마주닿고 깊고 부드러운 키스가 따라왔다. 콩, 이마를 부딪히고 천천히 눈을 뜨자 그 깊은 녹색 눈동자에 후루야의 눈이 가득 비쳤다. 손이 천천히 내려가 엉덩이를 꽉 쥐었다. 후루야의 양복바지에 음란한 주름이 가득 잡혔다. 그 손에 손을 겹쳐 깍지 끼고 떼어내, 그의 가슴 위로 올렸다. 그대로 부드럽게 밀린 아카이가 제 윗입술을 초조하게 핥았다.

"그럼 카레 해줘요!"
"네가 원하면 뭐든, 뭐?"

후루야가 찬장에서 초콜릿 발린 에너지바를 꺼내 그의 헤벌린 입에 하나 까물렸다. 그대로 침대로 밀려 갈 줄 알았던 아카이는 주방 불을 부리나케 켜고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하는 탐스러운 엉덩이를 그만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양파는 물러 버렸네요. 그래도 냉동해 놓은 게 있으니까 카레에 넣을 순 있어요. 당근, 감자, 돼지고기 다 있네요."

순식간에 재료를 착착 꺼내서 조리대에 올렸다. 양복 상의를 식탁 의자에 걸고 팔을 걷어붙여 쌀을 씻기 시작한 그를 보고 아카이가 범인처럼 두 손을 들었다.

"...당했군."

허망함을 털어낼 새도 없이 후루야가 아카이를 재촉했다.

"얼른 손 씻어요! 앗, 삶은 계란도 올려줘요. 그동안 전 짐 정리 해 둘 테니까."

그새 쌀을 밥솥에 앉힌 후루야가 현관과 주방의 그 어드매에서 길을 잃은 브리프 케이스를 찾아다가 끌고 들어갔다. 늘어진 당근이며 감자와 주방에 남은 아카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꿈에서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남자였다.

아카이의 브리프 케이스에서 옷을 몽땅 꺼내고 자신의 보스톤 백에서도 옷가지를 잔뜩 꺼내 빨랫감을 분리했다. 아무렇게나 빨아도 되는 옷을 먼저 세탁기에 돌리고 엉망이된 침실을 정리해도 아무 기미가 없었다. 다 됐다는 그의 목소리가 슬슬 들릴 때가 되었는데. 요리를 하는 분주한 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았다. 아카이, 부르는 후루야의 목소리에 식탁에 앉아있던 아카이의 어깨가 튀었다.

"다 된거 아니에요?"

그릇 두 개에 카레가 끼얹어져 있었다. 그의 쑥쓰러운 웃음 아래로 후루야가 마지막에 주문한 계란이 엉망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달걀이 왜 공격당했죠?"

소반에 뒹구는 계란들이 엉망으로 너덜너덜했다. 저렇게 되지 않도록 후루야가 미리 꺼내 놓았는데, 계란들은 본래의 하얗고 미끈한 낯이 간데 없이 파먹혀있었다. 식초 두 방울 넣는 것도 분명히 가르쳤는데. 아카이가 한 번 들은 것을 잊을리 없었다.

"그, 원래... 잘 못 까."

믿을 수 없어서 후루야가 하나 빼앗아 까 보았다. 식탁에 살짝 내려치고, 세 번 만에 깨끗하게 까졌다. 제대로 잘 삶아진 계란이 둥글고 매끈하게 소반위를 굴렀다. 하나 더 깨봐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어깨가 떨렸다. 세상에, 아카이가, 그 아카이가.

"그렇게 웃지 말아줘."
"미안, 미안해요.... 잠깐만...!"

후루야가 결국 식탁 아래로 주저 앉아 큭큭거렸다. 아카이는 빨갛게 달아오른 낯을 손등으로 가렸다. 별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후루야는 웃느라 그를 볼 수 없었다.

"내가 깐 건 내가 먹을 테니까 그만 돌아와."

아카이가 자신의 그릇에 엉망이된 계란 두 개를 올리고 후루야의 몫으로 잘 깐 두개를 올렸다. 그 와중에 가르쳐준 대로 한시, 세시 방향으로 가지런히 토핑해서 후루야는 다시 식탁 아래로 숨을 뻔 했다.

"안돼요. 아카이가 깐 건 내가 먹을 겁니다. 내놔요."

자신의 그릇을 그쪽으로 밀어버리고 방어하는 아카이의 손등을 찰싹 내려쳤다. 너덜너덜한 계란은, 매끈하진 않았지만 이 사이로 사랑스럽게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