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M
[아카아무]커리를 먹자!
58_오팔
2017. 5. 27. 23:06
*상윤준영
*커리를 먹으러 가는 아무말글
*커리 좋아하니?
*장미도 다 폈는데 안 핀 척 중입니다...
개나리도 벚꽃도 다 진 5월의 한 복판이라도 봄은 봄이었다. 모처럼의 휴가를 받은 준영이 냉장고를 뒤지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보들보들 병아리 같은 머리통이 여닫이문 사이로 솟았다 사라졌다 했다. 소파에 앉아 책장을 뒤적이던 상윤이 아예 책을 덮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또 불쑥 몸이 튀어나왔다.
"형, 마트 가요."
"내일이랑 주말에 먹을 정도는 있지 않아?"
며칠 전 상윤이 나름대로 장을 봐 둔 터였다. 주말에 만들어 둔 기본찬도 아직 떨어지지 않았고, 간식거리도 충분히 있었다. 신선식품은 미리 사 두면 맛이 떨어진다며 기꺼워하지 않는 준영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장을 봤다. 상윤도 나름대로 FBI 한국지부에서 높은 자리를 배정 받았지만 준영은 본청의 관리직이었고, 성격상 관리만 하지 않는 나쁜 상사였으므로 장보기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상윤의 몫이었다.
"봄이 잖아요. 도시락 싸서 꽃놀이 가요!"
냉장고 문에 매달려 몸을 뒤로 쭉 뺀 준영이 히히, 웃었다. 상윤은 당장에 책을 내려 놓고 차키와 겉옷을 챙겼다. 준영의 카디건도 집어 들어 옷시중을 들었다. 뒤돈채로 팔을 하나 하나 꾄 준영이 그대로 힘을 빼 상윤에게 기댔다.
"나가자며?"
"어허. 손!"
말과는 다르게 치골 부근을 쓰다듬으며 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그에게 쓰읍- 경고 했다. 조금 어리광 부렸을 뿐인데 손도 빠르지. 방심할 수가 없네. 턱을 잡고 뺨에 입 맞춰 주었다. 상윤이 나머지 한 손을 들어 올릴 때 타이밍을 맞춰 품에서 쏙 빠져나갔다.
"장 보러 가야죠."
상윤의 손이 허공을 쥐어 짰다.
"김 샀고, 오이 샀고, 햄, 맛살... 음, 속 재료 뭐가 좋아요?"
"저번에 해 준 참치."
"마요네즈 소스에 버무린거?"
준영이 손가락을 꼽았다. 모든 것은 완벽히 그의 머릿속에 리스트업 되어있어서, 보여주기 위한 행동일 뿐인 그것은 이미 습관이었다. 아니면 귀여우라고 하는 건가 상윤은 생각했다. 깜찍하긴 했다.
"뭐야, 왜 그렇게 봐. 뚫어지겠네."
준영이 툴툴대며 카트를 밀었다. 그 얼굴이 조금 붉었다. 얼른 뒤쫓아가 카트를 빼앗았다. 준영이 참치캔과 마요네즈를 고르는 사이, 옆 선반에서 과자를 잔뜩 집어넣은 상윤은 시치미를 떼고 의연하게 서 있었다. 준영이 콧노래를 부르며 뒤돌아 하나하나 돌려 놓았다.
"윽."
"먹지도 않는 과자를 왜 이렇게 사려고 하는지 원."
네가 먹잖아. 단 종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감자칩이나 전병 종류는 잘 먹는 그를 보는 게 좋았다. 뽀작뽀작 깨물어 먹는 양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먹고 싶어요?' 하며 하나 입 안에 물려주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었다. 말하면, 당신이 안 먹으니까 별 수 없이 내가 먹는 거죠! 음식을 버리면 벌 받아요! 호통이 날아올 것을 알기에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내가 특히 용서할 수 없는 건! 이 칼로리 밸런스야!"
상윤이 은밀하고 신속하게 대량으로 카트 아래 짐칸에 깔아 놓은 보존식량도 꼼꼼히 돌려 놓았다. 이렇게 까지 될 줄은 몰랐어. 역시 경찰청 경비국 호랑이 강준영 수사관이었다.
"귀신을 속이는 게 더 쉽겠군."
"당연하지요."
준영이 한쪽 눈썹을 들고 특유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했다.
***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진 밥을 양푼에 퍼담아 촛물을 끼얹고 잘 섞었다. 그대로 두어 한 김 식히고 지단 부칠 준비를 했다.
"형, 계란 네 개."
대기하고 있던 상윤이 얼른 계란을 갖다 바쳤다. 흰자와 노른자를 잘 분리한 준영이 한쪽을 그에게 넘겼다. 둘이 나란히 계란을 휘저어 풀었다. 먼저 일어나서 식탁에 김발이며 만든 속 재료를 넣을 반찬 통, 삼단 찬합을 준비해 놓은 것은 상윤이었다. 잘했다며 엉덩이를 두드려주었다. 그대로 소풍이 무산 될 뻔 했지만 이겨냈다.
"너무 저으면 딱딱해지니까 그만해요."
"응."
"에구, 개상윤씨 꼬리 흔들리는 것 좀 봐."
준영이 계란물을 넘겨 받아 팬을 돌려가며 지단을 부쳤다. 상윤이 옆에서 도마를 꺼내 펴 주었다. 거기에 잘 부친 지단들을 착착 옮겨 담고 돌돌 말아 국수처럼 잘랐다. 접시에 옮겨 담는 일은 상윤의 몫이었다. 당근도 볶고 시금치 나물도 했다. 참치마요를 만들 순서였다.
"자, 이상윤을 위한 참치를 버무려 볼까!"
"여기, 피클."
"미각이 좀 늘었네요."
준영이 흐뭇하게 웃었다. 느끼할 수도 있는 참치마요네즈에 피클을 잘게 잘라 넣으면 물리지 않고 입맛도 당겼다. 상윤이 피클을 잘게 다질 동안 다 삶아진 감자를 얼음물에 담그고 양쪽으로 당겨 껍질을 쏙쏙 벗겼다.
"그거 신기해."
"온도차 때문인 거 알잖아요?"
준영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오늘도 귀엽군 강준영군. 빵이 왜 부푸는지 알지만 오븐에서 부푸는 걸 직접 본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실험 관찰 과목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요리든 손쉽게 척척 해내는 그가 늘 신기하고, 멋졌다. 마법처럼.
피클을 다 다지자, 껍질 벗긴 감자를 그에게 넘기고 준영은 참치마요를 만들었다. 다 으깬 감자는 준영의 손에서 감자 사라다가 되었다. 머쉬드 포테이토가 아닌 강준영표 감자 사라다에는 작게 자른 오이와 당근, 삶은 계란과 사과가 들어갔다.
간이 된 밥을 김 위에 잘 펴고 다 된 속 재료를 듬뿍 넣은 다음 발을 밀어가며 잘 쌌다. 야물게 잘 싸진 김밥을 송송 썰어 쌓아 냈다. 꼬다리는 옆에 앉은 상윤의 입에 쏙쏙 넣어주고 제 입에도 몇 개 집어넣었다. 예쁘게 찬합에 옮겨 담고 사라다며 과일도 보기 좋게 담으니 제법 시간이 지나 있었지만 아침 일찍 부터 시작한 보람이 있어 아직 오전이었다.
상윤이 뒷 정리를 하는 동안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준영이 차 키를 들고 나왔다. 다 싼 찬합에 줄을 걸고 조심히 들어올리는 그를 준영이 이상윤, 불렀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아요?"
"너랑 가는 건데 그게 중요한가?"
"윽!"
또 한 번 소풍이 무산 될 뻔 했지만 이겨냈다.
"따라 나와요."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준영이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아아악 이상윤 귀여워! 차에 시동을 걸고 한강대교를 질주해버리고 싶은 걸 참느라 핸들을 잡은 손이 근질거렸다. 찬합을 들고 오느라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상윤이 그 옆에 얌전히 탔다.
사십여분 달려서 도착한 교외에는 흰 꽃이 쌀처럼 보실보실 핀 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이팝나무였다. 별 것 없는 교외 동네의 끝이라 별다른 객도 없이 조용했다. 드문드문 벤치에 앉아서 쉬는 사람들과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가 있을 뿐이었다.
그늘이 큰 나무 아래 앉아서 돗자리를 펼쳤다. 날아가지 말라고 신발을 벗어서 모서리 위에 올려 둔다. 자리에 앉자마자 준영이 가방에서 물티슈와 젓가락, 보온병을 꺼냈다. 건네받은 물티슈로 손을 닦는 동안 그가 재빨리 찬합을 분리했다.
"아, 진짜 배고팠다. 잘먹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젓가락을 들고 순식간에 도시락을 비우기 시작했다. 참치 김밥만 계속 먹는 상윤의 입에 중간중간 야채 김밥을 물렸다. 김밥 칸을 다 비우고 과일칸으로 넘어가서야 둘은 고개를 들고 꽃 구경을 했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과 흰 꽃이 제법 장관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꽃가지 하나가 찬합 위로 툭 떨어졌다. 상윤이 집어들고 유심히 보다가 머뭇머뭇 준영의 귓가에 그것을 꽂았다. 하하하 웃음이 하얗게 터졌다.
"바보 같기는."
눈을 접고 웃는 그의 속눈썹이 나무 그림자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반짝거렸다. 참지 못하고 거기에 입술을 눌렀다. 준영은 화내지 않는 대신 상윤의 비니를 얼굴까지 끌어내렸다.
"저리비켜, 이상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바닥이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언젠가의 대사가 그때와는 달리 부드럽게 귓바퀴를 감쌌다.
"음, 무드 없게 이런 소리 하기 싫은데요... ."
"괜찮아."
"이팝나무 꽃은 정말 쌀알 같네요. 특히 안남미."
"조팝나무 꽃이 폈더라고 한 날 조밥을 잔뜩 해 먹었지."
"네에. 안남미가 먹고 싶네요.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커리라던가."
"먹으러 갈까?"
상윤의 다리를 베고 누워 꽃구경을 하던 준영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재빨리 찬합을 정리하고 일어난 그를 따라 상윤도 돗자리를 접었다. 준영이 시동을 걸고 상윤을 재촉했다. 어쩐지 꽃놀이를 오자고 했을 때보다 신나 보였다.
"이태원 타지마할에 가서 머튼 코르마에 프라운 반달루를 사프란 라이스랑 갈릭 버터난이랑 먹어요. 쌀이 더 먹고 싶으니까 치킨 브리야니도 시키고 양이 적으면 탄두리 치킨도 반마리만 시키죠. 그 다음엔 터키 아이스크림 먹고, 좀 돌아다니다가 배 꺼지면 스페인 식당가서 빠에야도 먹고. 앗, 라씨도 먹고 싶은데 그거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면 좀 별론가?"
"먹다가 질리면 아이스크림 남은 건 내가 먹지."
"좋아!"
흰 차체가 이팝나무 사이를 매끄럽게 빠져나갔다.
*커리를 먹으러 가는 아무말글
*커리 좋아하니?
*장미도 다 폈는데 안 핀 척 중입니다...
개나리도 벚꽃도 다 진 5월의 한 복판이라도 봄은 봄이었다. 모처럼의 휴가를 받은 준영이 냉장고를 뒤지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보들보들 병아리 같은 머리통이 여닫이문 사이로 솟았다 사라졌다 했다. 소파에 앉아 책장을 뒤적이던 상윤이 아예 책을 덮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또 불쑥 몸이 튀어나왔다.
"형, 마트 가요."
"내일이랑 주말에 먹을 정도는 있지 않아?"
며칠 전 상윤이 나름대로 장을 봐 둔 터였다. 주말에 만들어 둔 기본찬도 아직 떨어지지 않았고, 간식거리도 충분히 있었다. 신선식품은 미리 사 두면 맛이 떨어진다며 기꺼워하지 않는 준영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장을 봤다. 상윤도 나름대로 FBI 한국지부에서 높은 자리를 배정 받았지만 준영은 본청의 관리직이었고, 성격상 관리만 하지 않는 나쁜 상사였으므로 장보기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상윤의 몫이었다.
"봄이 잖아요. 도시락 싸서 꽃놀이 가요!"
냉장고 문에 매달려 몸을 뒤로 쭉 뺀 준영이 히히, 웃었다. 상윤은 당장에 책을 내려 놓고 차키와 겉옷을 챙겼다. 준영의 카디건도 집어 들어 옷시중을 들었다. 뒤돈채로 팔을 하나 하나 꾄 준영이 그대로 힘을 빼 상윤에게 기댔다.
"나가자며?"
"어허. 손!"
말과는 다르게 치골 부근을 쓰다듬으며 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그에게 쓰읍- 경고 했다. 조금 어리광 부렸을 뿐인데 손도 빠르지. 방심할 수가 없네. 턱을 잡고 뺨에 입 맞춰 주었다. 상윤이 나머지 한 손을 들어 올릴 때 타이밍을 맞춰 품에서 쏙 빠져나갔다.
"장 보러 가야죠."
상윤의 손이 허공을 쥐어 짰다.
"김 샀고, 오이 샀고, 햄, 맛살... 음, 속 재료 뭐가 좋아요?"
"저번에 해 준 참치."
"마요네즈 소스에 버무린거?"
준영이 손가락을 꼽았다. 모든 것은 완벽히 그의 머릿속에 리스트업 되어있어서, 보여주기 위한 행동일 뿐인 그것은 이미 습관이었다. 아니면 귀여우라고 하는 건가 상윤은 생각했다. 깜찍하긴 했다.
"뭐야, 왜 그렇게 봐. 뚫어지겠네."
준영이 툴툴대며 카트를 밀었다. 그 얼굴이 조금 붉었다. 얼른 뒤쫓아가 카트를 빼앗았다. 준영이 참치캔과 마요네즈를 고르는 사이, 옆 선반에서 과자를 잔뜩 집어넣은 상윤은 시치미를 떼고 의연하게 서 있었다. 준영이 콧노래를 부르며 뒤돌아 하나하나 돌려 놓았다.
"윽."
"먹지도 않는 과자를 왜 이렇게 사려고 하는지 원."
네가 먹잖아. 단 종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감자칩이나 전병 종류는 잘 먹는 그를 보는 게 좋았다. 뽀작뽀작 깨물어 먹는 양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먹고 싶어요?' 하며 하나 입 안에 물려주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었다. 말하면, 당신이 안 먹으니까 별 수 없이 내가 먹는 거죠! 음식을 버리면 벌 받아요! 호통이 날아올 것을 알기에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내가 특히 용서할 수 없는 건! 이 칼로리 밸런스야!"
상윤이 은밀하고 신속하게 대량으로 카트 아래 짐칸에 깔아 놓은 보존식량도 꼼꼼히 돌려 놓았다. 이렇게 까지 될 줄은 몰랐어. 역시 경찰청 경비국 호랑이 강준영 수사관이었다.
"귀신을 속이는 게 더 쉽겠군."
"당연하지요."
준영이 한쪽 눈썹을 들고 특유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했다.
***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진 밥을 양푼에 퍼담아 촛물을 끼얹고 잘 섞었다. 그대로 두어 한 김 식히고 지단 부칠 준비를 했다.
"형, 계란 네 개."
대기하고 있던 상윤이 얼른 계란을 갖다 바쳤다. 흰자와 노른자를 잘 분리한 준영이 한쪽을 그에게 넘겼다. 둘이 나란히 계란을 휘저어 풀었다. 먼저 일어나서 식탁에 김발이며 만든 속 재료를 넣을 반찬 통, 삼단 찬합을 준비해 놓은 것은 상윤이었다. 잘했다며 엉덩이를 두드려주었다. 그대로 소풍이 무산 될 뻔 했지만 이겨냈다.
"너무 저으면 딱딱해지니까 그만해요."
"응."
"에구, 개상윤씨 꼬리 흔들리는 것 좀 봐."
준영이 계란물을 넘겨 받아 팬을 돌려가며 지단을 부쳤다. 상윤이 옆에서 도마를 꺼내 펴 주었다. 거기에 잘 부친 지단들을 착착 옮겨 담고 돌돌 말아 국수처럼 잘랐다. 접시에 옮겨 담는 일은 상윤의 몫이었다. 당근도 볶고 시금치 나물도 했다. 참치마요를 만들 순서였다.
"자, 이상윤을 위한 참치를 버무려 볼까!"
"여기, 피클."
"미각이 좀 늘었네요."
준영이 흐뭇하게 웃었다. 느끼할 수도 있는 참치마요네즈에 피클을 잘게 잘라 넣으면 물리지 않고 입맛도 당겼다. 상윤이 피클을 잘게 다질 동안 다 삶아진 감자를 얼음물에 담그고 양쪽으로 당겨 껍질을 쏙쏙 벗겼다.
"그거 신기해."
"온도차 때문인 거 알잖아요?"
준영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오늘도 귀엽군 강준영군. 빵이 왜 부푸는지 알지만 오븐에서 부푸는 걸 직접 본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실험 관찰 과목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요리든 손쉽게 척척 해내는 그가 늘 신기하고, 멋졌다. 마법처럼.
피클을 다 다지자, 껍질 벗긴 감자를 그에게 넘기고 준영은 참치마요를 만들었다. 다 으깬 감자는 준영의 손에서 감자 사라다가 되었다. 머쉬드 포테이토가 아닌 강준영표 감자 사라다에는 작게 자른 오이와 당근, 삶은 계란과 사과가 들어갔다.
간이 된 밥을 김 위에 잘 펴고 다 된 속 재료를 듬뿍 넣은 다음 발을 밀어가며 잘 쌌다. 야물게 잘 싸진 김밥을 송송 썰어 쌓아 냈다. 꼬다리는 옆에 앉은 상윤의 입에 쏙쏙 넣어주고 제 입에도 몇 개 집어넣었다. 예쁘게 찬합에 옮겨 담고 사라다며 과일도 보기 좋게 담으니 제법 시간이 지나 있었지만 아침 일찍 부터 시작한 보람이 있어 아직 오전이었다.
상윤이 뒷 정리를 하는 동안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준영이 차 키를 들고 나왔다. 다 싼 찬합에 줄을 걸고 조심히 들어올리는 그를 준영이 이상윤, 불렀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아요?"
"너랑 가는 건데 그게 중요한가?"
"윽!"
또 한 번 소풍이 무산 될 뻔 했지만 이겨냈다.
"따라 나와요."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준영이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아아악 이상윤 귀여워! 차에 시동을 걸고 한강대교를 질주해버리고 싶은 걸 참느라 핸들을 잡은 손이 근질거렸다. 찬합을 들고 오느라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상윤이 그 옆에 얌전히 탔다.
사십여분 달려서 도착한 교외에는 흰 꽃이 쌀처럼 보실보실 핀 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이팝나무였다. 별 것 없는 교외 동네의 끝이라 별다른 객도 없이 조용했다. 드문드문 벤치에 앉아서 쉬는 사람들과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가 있을 뿐이었다.
그늘이 큰 나무 아래 앉아서 돗자리를 펼쳤다. 날아가지 말라고 신발을 벗어서 모서리 위에 올려 둔다. 자리에 앉자마자 준영이 가방에서 물티슈와 젓가락, 보온병을 꺼냈다. 건네받은 물티슈로 손을 닦는 동안 그가 재빨리 찬합을 분리했다.
"아, 진짜 배고팠다. 잘먹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젓가락을 들고 순식간에 도시락을 비우기 시작했다. 참치 김밥만 계속 먹는 상윤의 입에 중간중간 야채 김밥을 물렸다. 김밥 칸을 다 비우고 과일칸으로 넘어가서야 둘은 고개를 들고 꽃 구경을 했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과 흰 꽃이 제법 장관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꽃가지 하나가 찬합 위로 툭 떨어졌다. 상윤이 집어들고 유심히 보다가 머뭇머뭇 준영의 귓가에 그것을 꽂았다. 하하하 웃음이 하얗게 터졌다.
"바보 같기는."
눈을 접고 웃는 그의 속눈썹이 나무 그림자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반짝거렸다. 참지 못하고 거기에 입술을 눌렀다. 준영은 화내지 않는 대신 상윤의 비니를 얼굴까지 끌어내렸다.
"저리비켜, 이상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바닥이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언젠가의 대사가 그때와는 달리 부드럽게 귓바퀴를 감쌌다.
"음, 무드 없게 이런 소리 하기 싫은데요... ."
"괜찮아."
"이팝나무 꽃은 정말 쌀알 같네요. 특히 안남미."
"조팝나무 꽃이 폈더라고 한 날 조밥을 잔뜩 해 먹었지."
"네에. 안남미가 먹고 싶네요.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커리라던가."
"먹으러 갈까?"
상윤의 다리를 베고 누워 꽃구경을 하던 준영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재빨리 찬합을 정리하고 일어난 그를 따라 상윤도 돗자리를 접었다. 준영이 시동을 걸고 상윤을 재촉했다. 어쩐지 꽃놀이를 오자고 했을 때보다 신나 보였다.
"이태원 타지마할에 가서 머튼 코르마에 프라운 반달루를 사프란 라이스랑 갈릭 버터난이랑 먹어요. 쌀이 더 먹고 싶으니까 치킨 브리야니도 시키고 양이 적으면 탄두리 치킨도 반마리만 시키죠. 그 다음엔 터키 아이스크림 먹고, 좀 돌아다니다가 배 꺼지면 스페인 식당가서 빠에야도 먹고. 앗, 라씨도 먹고 싶은데 그거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면 좀 별론가?"
"먹다가 질리면 아이스크림 남은 건 내가 먹지."
"좋아!"
흰 차체가 이팝나무 사이를 매끄럽게 빠져나갔다.